극장에서 보고 주말 외화를 통해 이 영화를 접했던 당시 기억에 각인되어 오랫동안
영화에 대한 기억이 조금씩 변질되기는 하였지만 일부 영화는 잊지 못할 영화로 남아있다
나는 추억때문인지 이 오래된 영화가 더 좋았던 것 같다

 

 

숀코네리.출생-사망 영국 1930년 8월 25일
 2020년 10월 31일 
신체 188cm 가족 아들 제이슨 코네리 데뷔 1955년 영화 'Lilacs in the Spring' 

 

 

 

숀 코네리는 지난 10월 31일 바하마에서 잠을 자던 중 숨을 거뒀다
향년 90세. 숀 코네리의 부인은 “남편은 치매를 앓고 있었다”면서
평화롭게 세상을 떠났다”고 말했다
과거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은 “인디아나 존스의
아버지를 연기할 사람은 제임스 본드 밖에 없다
오리지널 제임스 본드, 위대한 제임스 본드 숀 코네리”라고 말했다

 

 

 

 

 

캘러미티 제인은 1870년대 미 서부 다코타주에 실존했던
서부 개척 당시 인물로, 제인이라는 인물에게서 무거움과
역사적 평가를 배제한 채로 데드우드라는 작은 마을에서
벌어지는 유쾌한 소동을 다룬 영화. 캘러미티 제인

 

 

 

 

 

 

 

 

도리스 데이 와 하워드 킬

 

 

60년대 스크린 요정 '도리스 데이' 사망…97세

 

 

알프레드 히치콕 감독의 ‘나는 비밀을 알고 있다‘에 주연으로
출연하고 주제가 ‘케 세라 세라’를 부른 것으로 널리 알려졌던
도리스 데이가 심한 폐렴에 걸려 캘리포니아의 집에서 사망했다는
소식이 5월 13일에 알려지자 전세계 연예계 스타들이 온라인을 통해 헌사를 바쳤다

 

 

 

 

쇼보트(Show Boat). 1951년. 조지 시드니 감독. 캐스린 그레이스
에바 가드너, 하워드 킬 주연. 리버보트 선장의 딸이 매력적인 
도박사에게 마음을 빼앗기지만 도박사는 운이 다했는지 
크게 지자 이들의 로맨스도 위협을 받는다.

 

 

캐스린 그레이스

 

에바 가드너

 

 

유명한 가성 女 카나다 출신 셀린디온

 

 

 

 

 

세계의 유명한 가성 女 카나다 출신 셀린디온 은
영화 ‘타이타닉’의 주제가 ‘마이 하트 윌 고 온 으로
국내에서도 큰 사랑을 받은 '팝의디바 입니다 
27살 연상의 남편 르네 앙젤릴은 셀린 디온의 매니저를 도맡아 
그를 스타 대열에 들게 한 일등 공신 입니다
남편은 인후암 투병 중 세상을 떠났고, 셀린 디온은
라스베이거스 무대에 올라 눈물의 헌정 공연을 하는 모습 

 

 

 

내가 좋아하는 배우 하워드 킬

 

 

미국의 뮤지컬 스타에서 만년에는 인기 TV 드라마
댈러스 의 주인공으로도 인기를 끌었던
하워드 킬이 7일 85세를 일기로 사망했다.
일리노이주에서 광부의 아들로 태어났던 킬은 뉴욕과 런던에서
뮤지컬 배우로일하다 MGM사에 발탁돼 첫 기용된 뮤지컬
영화 '애니 겟 유어 건'의 성공으로 스타로 발돋움했다
그는 이후 매력적인 풍부한 성량과 넓은 어깨의 건장한 체격으로
에스터 윌리엄스에서 도리스 데이에 이르기까지 여러 뮤지컬
여주인공들의 상대역을 맡으며 전성기를 구가했다

 

산속 깊은 곳 통나무 집에 살고 있는 7명의 형제가 시내에 사는 아가씨들을

동시에 납치해 오고 신부로 맞이하기까지의 과정을 유쾌하게 그린 뮤지컬로

아름다운 산과 숲을 배경으로 오래전에 수십번 보았지만 등장 인물은 고인이되어 

최고의 뮤지컬 음악으로 생각 합니다 

 

 

 

 

 

하워드 킬 자신은 가장 좋아하고 애착을 느꼈던 뮤지컬 영화로 
7인의 신부'를 꼽으며 스팅도 좋았고 제작 과정이 매우 즐거웠다"고 술회했다

 

 

 

재능의 배우 제임스 메이슨 (James Mason) 

 

1984 년 사망 한 후, 그가 보편적 인 재능의 배우라는 사실에 관해 이야기했습니다
수백 편의 영화에서 경력을 쌓은 영리하고 매력적이며 창의적인 사람
인쇄판에 따르면 모든 이들이 자신의 재능에 걸맞지는 않다고합니다
제임스 메이슨 (James Mason)은 가장 가난한 자료를 더 높은 수준으로
끌어 올렸으며, 물론 세계 영화계에서 최고를 풍성하게 만들 수있었습니다
배우는 골든 글로브 (Golden Globe)와 오스카 (Oscar), 새턴 (Saturn), BAFTA 등
가장 유명한 상을 수상하기 위해 반복적으로 지명 되었습니다

 

 

전염병 관련 영화 아웃브레이크

꼭 보아야 하는 영화로 생각 합니다

세계가 바이르스 감염증으로 참고가 되는 영화 입니다

저는 TV OCN 에서 보면서 지구의 현실로 비교가 됩니다

 

1967년 아프리카 자이르(Zaire)의 모타바 계곡 용병 캠프에서 의문의
출혈열이 발생, 군인들이 죽어가자 미군에 긴급 의료 지원 요청을 한다
하지만 상황의 심각성을 느낀 미군은 혈액만 채취한 뒤 일방적으로
용병 캠프에 폭탄을 투하 모두 몰살시켜 버린다

 

 

 

 

 

 

 

 바이르스 감염증 으로 아프리카의 한 지역에서

갑작스럽게 군인들이 죽어가기 시작합니다.

 

더스틴 호프만 주연

(졸업 영화) 더스틴 호프만과 캐서린 로스를 주인공으로
선발하여 그해 최고의 흥행실적을 올린 영화로 만들었다
더스틴 호프만 은 영화 주제가인 사이먼과 가펑클의 스카보로의 추억
사운드 오브 사일런스 미세스 로빈슨 등 주옥같은 영화 주제가도
큰 인기를 얻었으며 지금도 사랑받고 있는 대표적인 영화음악 이다

 

 

 

 

 

 

 

 

 

아웃브레이크 더스틴 호프만  주연

 

 

 

 

 

저가 좋아하는

지난시절 허리우드의 명배우들

지금은 오래전 고인이 되시고

추억의 영화을 생각 하면서 편집하여 올려 봅니다

 

 

죤웨인 출생- 1907년 5월 26일, - 1979년 6월 11일

 

필립 안은 존 웨인 주연의 <바탄전투>에서 비중 있는 악역으로 출연했다
독립운동가의 아들이 일본군역을 맡는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영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에 출연한

배우 올리비아 드 하빌랜드

 

 

영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에 출연한 배우 올리비아 드 하빌랜드가

7월26일(현지 시간) 별세했다고 로이터통신 등이 보도했다

향년 104세. 드 하빌랜드는 이날 프랑스 파리 자택에서 자연사했다

드 하빌랜드는 영국, 미국, 프랑스 시민권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1950년대 초반 이후 파리에서 거주했다

 

 

 

크라크 케이블. 비비안리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출생-사망 1901년 2월 1일, 미국 - 1960년 11월 16일

서부영화 (거인) 을 보면서 카우보이 대표작 으로 보았습니다

 

 

 

마이클 더글라스, 父 커크 더글라스 추모

아들인 게 자랑스럽다

 

 

 

 

영화 애수 로버트 테일러 .비비안리

 

 

 

로버트 테일러 .비비안리영화 아이반호 

 

 

1914. 5. 5, 미국 오하이오 신시내티
1958. 11. 15, 스페인 마드리드
타이론 파워는 미국의 미남 배우로
매력적인 모델같은 외모로 유명해졌다
1936년 영화 〈런던의 로이드〉로 성공한 뒤
다양한 영화와 연극에 주연으로 출연하여
수많은 히트작을 남겼다

 

 

솔로몬과 시바 여왕 촬영중

타이론파워는 고혈압으로 넘어저

율브린너가 솔로몬 역활 입니다

 

 

 

당시에 뮤지컬 배우 진켈리 비는 사랑을타고

최고의 명작 저는 수없이 많이본 영화 입니다

 

1952년 사랑은 비를 타고

감독:진 켈리, 스탠리 도넌 .진 켈리, 도널드 오코너

데비 레이놀즈 (OST-Singin' in the Rain)

 

 

진 켈리와데비 레이놀즈

  •  

 

할리우드 100년 역사상 가장 완벽한 남자라 불린 배우

외모, 재능, 지성, 인성 모두 완벽했던 폴 뉴먼

 

1912년, 로스엔젤레스 인스빌에 영화 스튜디오가 설립된 이래 100년 남짓한 역사를 이어온 할리우드. 그 후로 영화의 발전과 궤를 같이하여 수많은 스타들이 할리우드에서 뜨고 졌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완벽한 남자’라 불리며 존경을 받아온 전설적인 배우가 있습니다. 바로 제임스 딘, 말론 브란도와 함께 시대의 아이콘으로 군림한 폴 뉴먼입니다. 외모와 재능, 지성과 인성 모두를 갖춘 완벽한 남자로 불린 그는 어떤 점들이 그렇게도 특별했던 걸까요?

 

 

 

완벽한 외모와 연기력

컬러 영화의 일반화와 맞물려 생기 있는 금발과 빨아들이는 듯 깊은 눈빛을 지닌

아름다운 푸른 눈을 지닌 폴 뉴먼은 50년대 미국을 대표하는 미남 배우로 큰 인기를

끌만큼 출중한 외모를 자랑했습니다.

 

폴 뉴먼은 요즘 말로 차가운 도시 남자에 해당하는 냉소적이고

이지적인 매력으로 사람들에게 널리 사랑받았는데요.

 

길들일 수 없을 것만 같은 야성미로 유명한 말론 브란도나 모성애를 자극하는 제임스 딘의

위태로운 반항아 이미지와는 또 다른 매력을 지니고 있었죠.

 

 

 

      생년월일 1925-01-26 사망2008-09-26

할리우드를 비롯한 각계인사들이  83세를 일기로 타계한

미국 배우 폴 뉴먼을 애도하고 있다고 AP, AFP, dpa통신 등이 27일 전했다.
50년이 넘는 오랜 연기활동을 통해 수많은 배우들과 공연한 뉴먼의 능력, 인간미,

우정 등을 기억하는 동료와 후배 배우들은 뉴먼의 별세를 슬퍼하며 앞다투어 추도사를 발표했다.
뉴먼과 '내일을 향해 쏴라'(1969), '스팅'(1973) 등에서 공연한

로버트 레드퍼드(71)는 "진정한 친구"를 잃었다며 애도했다.

 

 

 

 

 

 

 

 

 키노라이츠 에서 옮겨운 글문

 

 

 

 

 

 

신이 그에게 준 선물은 외모뿐만이 아니어서 골든 글로브 남자 신인상으로 화려하게 등장한 이래 50년 남짓한 배우로 활동하면서 10번의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 연기상 노미네이트…그리고 그중 두 차례나 수상에 성공했으며 칸과 베를린 국제영화제에서도 연기상을 수상한 적 있는 비범한 재능의 소유자기도 했습니다. 심지어 이 재능을 스크린을 넘어 브라운관으로 가져가 종횡무진 활약하며 2006년 ‘엠파이어 폴스’로 골든 글로브와 에미상마저 거머쥐며 TV까지 정복한, 명실상부 20세기 최고의 배우 가운데 하나입니다.

 

 

심지어는 1968년에 감독으로 변신해 선보인 연출 데뷔작 <레이첼 레이첼>은

아카데미 작품상 후보에 올랐으며, 골든 글로브 감독상은 수상에 성공하면서

그의 재능의 끝은 어디인가라는 의문을 자아내기도 했습니다.

 

 

 흠결 없는 사생활 - 좋은 남편이자 가장

 

 

 

 

또한 할리우드의 기라성 같은 스타들도 사생활 영역에서 많은 비판을 받았던 것

을 생각하면 평생 배우자와 자녀들에게 충실한 남편이자 좋은 아버지였던 뉴먼은 꽤 드문 케이스라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같은 배우인 조안 우드워드와 결혼하여 슬하에 다섯 자녀를 둔 뉴먼 부부는 12편의 영화에 동반 출연하며 금슬을 과시하기도 했는데요. 평소 입버릇처럼 “집에서 스테이크를 먹을 수 있는데 왜 밖에 나가서 햄버거를 먹겠습니까?”라며 아내에 대한 애정을 감추지 않는 사랑꾼이기도 했죠. 외도로 인해 파혼과 파경이 빈번한 연예계에서 분명 본받을 만한 사례가 아닐까 싶습니다.

3. 진정한 노블레스 오블리주 - 글로벌 식품회사의 설립자 "모든 수익은 사회로 환원한다"

하지만 배우와 감독으로 종횡무진 활약하던 뉴먼에게 갑작스러운 아픔이 찾아옵니다. 당시 스물여덟 살이던 아들 ‘스콧 뉴먼’이 마약 과용으로 목숨을 잃자 그의 이름을 딴 재단을 설립해 약물과 알코올 중독자를 돕는 사회복지사업을 시작하면서 자선 사업에 본격적으로 관심을 가지기 시작합니다.

 

이와 비슷한 시기에 평소 요리 솜씨가 좋았던 그는 이웃들에게 극찬받았던

직접 만든 샐러드 드레싱을 사업 아이템으로 삼아, 친구인 A.E 호츠너와 함께 사업에 뛰어듭니다

그렇게 탄생한 식품회사 ‘뉴먼스 오운’은 곧 망할 것이라던 주변의 우려를 불식시키며

설립 후 5년간 매년 20%의 매출 증가율을 기록하며 급성장합니다.

 

그리고 여기서 폴 뉴먼의 경영 철학이 빛을 발하게 되는데, 바로 '해마다 회사의 모든 수익금을 기부하고 재투자를 받는다'는 원칙을 세우고 첫해부터 이를 거듭 실행했다는 것입니다. 그는 83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나기까지 자신의 회사로부터 단 한 푼의 월급도 받지 않았다고 하는데요. 이러한 사실이 사람들에게 알려지면서 뉴먼스 오운의 제품을 구입이 곧 사회에 이바지하는 것이라는 의식이 퍼지게 됐고 선한 영향력이 더 크게 발휘될 수 있었다고 합니다.

 

 

 

 

 

뉴먼의 얼굴이 붙은 샐러드 드레싱들은 날개 돋힌 듯 팔려 나갔고 점차 다양한 아이템으로 사업은 크게 확장되었습니다. 그렇게 얻은 수익은 모두 스콧 뉴먼 센터에 기부되어 청소년 약물 오·남용 방지/치유 프로그램에 쓰이게 됩니다. 그로부터 5년 뒤에는 자신의 대표작 가운데 하나인 <내일을 향해 쏴라>의 비밀 은신처에서 이름을 딴 ‘벽 속의 구멍 갱단(Holl in the Wall Gang) 캠프’를 설립해 난치병 아이들에게 아름다운 추억과 희망을 선사하는 프로젝트를 실행하게 됩니다. 당연하게도 뉴먼은 자신의 이름만을 공허하게 걸어두고 이미지메이킹의 일환으로 자선사업을 하는 이들과는 달리 헌신적으로 아이들의 행복을 위해 노력했고, 그 노력은 헛되지 않아 ‘벽 속의 구멍 갱단 캠프’는 미국 31개 주와 해외 28개국에 지사를 둔 거대한 구제아동기구로 성장했습니다.

 

 

현재까지 '뉴먼스 오운'이 사회에 환원한 기부금 총액은 무려 5억 달러(한화 약 6000억 원)를 훌쩍 넘겼으며, 폴 뉴먼의 이런 행보는 미국 아카데미 공로상 수상 및 24년 TIME 지가 선정한 '우아하게 늙어가는 미국인 TOP 10' 선정의 영예로 돌아오게 됩니다. ‘할리우드 역사상 가장 완벽한 남자’라는 찬사가 전혀 과분하지 않은, 진정한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한 셀럽이라는 생각이 드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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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y Way - Elvis Presley

자, 이제 마지막이 가까워 졌군 내 생의 마지막 순간을 대하고 있어
친구, 분명히 해두고 싶은게 있어 내가 확신하는 바대로 살았던
삶의 방식을 얘기해 볼께 난 충만한 삶을 살았고,
정말 많은 것을 경험하며 돌아 다녔지만,
그 보다 훨씬 더 굉장했던 것은 난 항상 내 방식대로 살았다는 거야

후회라... 꽤 있었지 그렇지만 달리 보니,
끄집어내어 이야기할 정도로 았던 것은 아냐 난 내가 해야 할 일을! 했었고,
한치도 예외없이 그것을 끝까지 해냈지 난 계획된 길을 따라가기도 했고,
샛길을 따라 조심스러운 걸음도 계획했었어 그리고.그 보다 더 가치있었던 것은
난 항상 내 방식대로 살았다는 거야

그래 맞아,자네도 잘 알겠지만,어떤 때는 지나치게 과욕을 부린 적도 있었지.
하지만 그런 모든 일을 겪는 도중,의심이 생길 땐 전적으로 신용했다가도,
딱 잘라 말하기도 서슴치 않았어 모든 것과 정면으로 맞서면서도,
난 당당했고, 내 방식대로 해냈던 거야 사랑도 해봤고,웃기도, 울기도 했었지.
가질 만큼 가져도 봤고 잃을 만큼 읽어도 봤지.이제, 눈물이 가신 뒤에 보니,
모두 즐거운 추억일 뿐이야 내가 했던 모든 걸 생각하니,부끄러워 하지 않는 투로
이렇게 말해도 되겠지.아뇨, 무슨 말씀을, 난 달라요.난 내 방식대로 살았어요 라고

사나이가 사는 이유가 뭐고,가진 것이 과연 뭐겠어?
그 자신의 주체성이 없다면,가진게 아무 것도 없는거지
비굴한 사람들이 하는 말이 아니라,자신이 진실로 느끼는 것을 말하는게
진정 남자 아니겠어 내 경력이 말해주고 있듯이 난 어려움! 을 피하지 않았고
항상 내 방식대로 해결했어 그래, 그건 나만의 방식이었어.

 

후랑커 시나트라의 일생의 삶의 노래 였지만 고인 프레스리가 슬픈 음감으로 올렸습니다

에리자베스 테일러 에게 바치면서 노후에 봉사와 파란 만장한 사생활과 좋은 일도 많이 하였다 합니다

 하늘 나라에서 편이 잠드소서  

                          1932.2.27~2011.3.23… 엘리자베스 테일러 사망

 

 

 

 

 

엘리자베스 테일러는 두차례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수상했다.
       삼가 故人의 명복을 빕니다.

 

 

그는 아름다움이었다. 때론 하얀 순수(純粹)였고 때론 붉은 정염(情炎)이었다. 그는 사랑이었다. 엘리자베스 테일러. 시대를 초월한 세기의 여신(女神). 그가 23일 자신의 나라로 돌아갔다, 하늘로. 이 세상에서 우리와 함께한 햇수는 79년.

 

1948년 미국 라이프지 표지모델로 등장한 16살의 엘리자베스 테일러. 데뷔한 지 6년째 되던 해이다. /매그넘포토

2004년부터 앓아온 울혈성 심부전증이 결국 그를 우리로부터 떼놓고 말았다. 2009년 수술 뒤 "새로운 심장이 몸속에서 뛰고 있는 듯한 느낌이다"라며 삶을 기뻐하더니 결국 하늘의 부름을 뿌리치지 못했다.

1932년
영국 런던 햄스테드 출생. 1939년 부모와 함께 미국으로 건너가 1944년 영화 '녹원의 천사'로 아역 스타가 됐다. 이후 1960년과 1966년 두 차례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받았다. 7명의 남자와 8번 결혼한 사생활이 화젯거리였다. 노년에는 에이즈 퇴치 등 사회활동에 힘을 쏟았다. 이제 은막의 여제에게 할 말은 이것뿐. "굿바이 리즈!"

 

사람들은 그것을 '남성 편력(遍歷)'이라고 했다. 그러나 본인에겐 사랑을 찾기 위한 여정(旅程)일 따름이었다. 엘리자베스 테일러의 결혼사(史), 리즈의 남자들 이야기다.

'
영국의 장미' 엘리자베스 테일러는 7명의 남자와 8번 결혼하고 이혼했다. 리처드 버튼(Burton)과는 두 번 결혼했고 두 번 모두 이혼했다. 버튼은 테일러에게 보낸 편지에서 "우리의 관계는 지구와 금성만큼이나 멀다"고 했지만 테일러는 "가장 사랑했던 남자"로 버튼을 꼽았다.

테일러는 버튼을 만나기 전 네 번 결혼했다. 18살 때인 1950년 힐튼 호텔 창업자의 아들인 콘래드 힐튼(Hilton)과 첫 결혼식을 올렸다. 힐튼의 알코올 중독과 가정 폭력 때문에 이듬해 바로 헤어졌다. 두 번째 연인은 영국 배우 마이클 윌딩(Wildling). 1952년 결혼식을 올리고 아들 둘을 낳았다. 그러나 1957년 이혼했고 한 달 만에 영화 제작자인 마이클 토드(Todd)와 부부의 연을 맺었다. 1958년 딸을 낳자마자 토드가 비행기 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리즈는 이듬해 고인이 된 남편의 가장 친한 친구이자 가수인 에디 피셔(Fisher)와 결혼식을 올렸다. 6년 가까이 이어지던 결혼 생활은 버튼 때문에 끝이 났다. 둘 다 기혼자면서 영화 '클레오파트라'(1963)에 함께 출연한 것을 계기로 사랑에 빠졌다. 마침내 1964년 3월 6일 테일러는 피셔와 이혼하고 10여일 만에 버튼과 결혼식을 올렸다. 부부로 지내는 동안 10편의 영화에 함께 출연했고 10년간 살다가 버튼의 알코올 중독 문제로 1974년 헤어졌다. 이혼한 지 14개월 뒤 이들은 다시 결혼했다.

버튼과 헤어진 이후 테일러는 꽤 안정적인 결혼 생활을 해나갔다. 1976년 공화당 상원의원이었던 존 워너(Warner)와 결혼식을 올렸고 1982년까지 함께했다. 그 이후로 10년 가까이 테일러는 결혼하지 않다가 1991년 20세 연하인 공사장 노동자 래리 포텐스키(Fortensky)와 마이클 잭슨(Jackson)의 목장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1. 콘래드 힐튼 주니어 2. 마이클 윌딩 3. 마이클 토드 4. 에디 피셔 5·6.리처드 버튼 7. 존 윌리엄 워너 8. 래리 포텐스키 A. 아르데시 자헤디 B. 젊은 시절의 엘리자베스 테일러

바이올렛 색채의 눈동자가 감겼다. ‘20세기 최고의 미인’이 하늘의 별이 된 것이다.

현대의 클레오파트라로 불리며 할리우드 황금기를 꽃피운 미국 유명 여배우 엘리자베스 테일러가 23일 타계했다. 향년 79세.

리즈(엘리자베스의 애칭)의 홍보담당사는 이날 성명을 내고 “리즈가 로스앤젤레스 시더스-사이나이 병원에서 울혈성 심부전증으로 숨졌다”고 발표했다. 리즈는 2004년부터 앓아온 이 병으로 지난달 입원했다.

미국 영화사는 이른바 할리우드의 황금시대를 대표하는 위대한 여배우 중 한 명으로 리즈를 꼽는다. 할리우드로 상징되는 미국 영화에 전 세계가 빠져들 때 할리우드는 리즈에게 사로잡혔다. 1960, 70년대 메이저 제작사들의 백가쟁명 속에서 고전적인 스튜디오 제작 시스템이 찬란하게 꽃필 때 리즈는 최고의 여배우였고, 미국 영화가 세계 영화의 대중적인 표준으로 자리 잡던 시기에 맞춰 세기의 연인으로 사랑받았다.

리즈는 1932년 영국 런던에서 미술품 거래상인 아버지와 연극배우였던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미국에서 건너온 리즈의 부모는 1939년 제2차 세계대전이 시작되자 다시 로스앤젤레스로 향했다. 어머니의 끼를 물려받은 리즈가 연기에 발을 디딘 것은 수려한 외모를 알아본 지인이 카메라 테스트를 권하면서부터. 10세에 데뷔해 12세 때인 1944년 MGM이 제작한 ‘녹원의 천사(National Velvet)’를 통해 스타덤에 올랐다. 소녀는 곧 비평가들과 대중을 모두 숨죽이게 만든 매혹적인 성인 스타로 자라났다. 짙은 검은색 머리카락과 흰 눈처럼 창백한 얼굴, 바이올렛 색채의 눈동자가 어우러진 미모에 구름 같은 팬들이 몰려들었다.

하지만 리즈는 연기가 아닌 외모에 주목하는 사람들의 시선이 못미더웠다. 리즈는 훗날 인터뷰에서 “당신이 예쁘다고 생각하나요? 그렇다면 연기를 하려고 노력하는 웨이트리스가 될 뿐이죠. 당신은 절대로 존경받지 못할 거예요”라고 말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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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3년 5월 프랑스 칸국제영화제에서 엘리자베스 테일러가 ‘에이즈를 퇴치하는 영화’ 행사에 참석해 환호하는 팬들에게 손을 흔들어 답하고 있다. 그는 영화 ‘자이언트’에서 함께 공연한 친구 록 허드슨이 에이즈에 걸리자 1985년 에이즈 퇴치운동을 시작했고 1999년엔 자신의 이름을 딴 에이즈 퇴치 운동 단체를 설립했다. 칸=AFP 연합뉴스

리즈 “나 죽거든 버튼 고향에 뿌려지길…”
총 8번 결혼…리처드 버튼과 두번 결혼·결별
뉴스엘리자베스 테일러는 18살때인 1950년 5월 호텔 재벌인 콘라드 힐튼 2세와 처음 결혼했지만 그해 12월 이혼했다. 이어 1952년에는 영국 영화배우 마이클 와일딩과 결혼해 두 아들을 두었지만 4년만에 헤어졌다. 1957년에는 영화 제작자인 마이클 토드와 결혼해 딸을 낳았지만 토드는 다음해 비행기 추락사고로 숨졌다.토드가 죽은 뒤 테일러는 토드의 절친한 친구이자 자신의 친구 데비 레널즈의 남편이었던 팝가수 에디 피셔와 염문을 뿌려 화제가 됐다. 테일러는 당시 한 기자에게 “혼자 자란 말이야?”라고 말하기도 했다.테일러와 피셔 부부는 그러나 테일러가 1962년 영화 클레오파트라 촬영장에서 리처드 버튼을 만나면서 파경을 맞게 된다. 테일러는 버튼과 두번의 결혼, 파경으로 인

 

연을 끝냈지만 ”내가 죽으면 버튼의

고향에 뿌려지길 원한다“고 말했다.
이후 해군장관을 지낸
정치인워너와 1976년 결혼했고 1982년 헤어졌고 1991년 20년 연하인 공사장 노동자이자 트럭 운전기사이던 래리 포텐스키와 마이클 잭슨의 목장

에서 결혼식을 치러 화제를 낳기도 했지만 5년만인 1996년 파경을 맞았다. 그리고 지난해 29세 연하남인 할리우드 매니저 제이슨 윈터스와의 약혼설이 나돌기도 했으나 공식 부인했다. 

♪ The Shadow of Your Smile - from Movie 고백(The Sandpiper, 1965)


 


 

 

 

그제 떠난 엘리자베스 테일러는 할리우드식 표현으로 '기절할 만큼 예쁜 미인(stunning beauty)'이었다. 1950년대 절정을 달린 배우 중에 매릴린 먼로가 '섹스 심벌', 그레이스 켈리가 '얼음 공주', 오드리 헵번이 '영원한 명랑소녀'였다면, 깊은 보랏빛 눈동자를 지닌 테일러는 그 종합판 같은 '미(美)의 화신'이었다. 사진기자들은 테일러의 얼굴이 완벽한 좌우대칭이라고 말했다. 밉게 보이는 각도(bad angle)가 없었다는 뜻이다.

▶그러나 어제 영화 사이트 톱텐츠넷이 뽑은 '가장 눈이 아름다운 여배우' 10명 중에 테일러는 4등이었다. '숨 막히도록 예쁜' 인도 배우 아이슈와리아 라이가 1위, 앤젤리나 졸리가 2위, 헵번이 5위다. '1930년대 이후 가장 아름다운 여배우'에서도 40년대 섹시 스타 리타 헤이워스가 1위, 테일러는 6등이다. 무비폰블로그가 매긴 할리우드 최고 여배우 30명에선 테일러가 11번째로 올랐다. 무비메이든스가 1950년대 스타만 별도로 집계한 데에선 테일러-먼로-켈리-헵번 순이었다.

 

 

                                                  에리자 베스 말년의 표정은 마지막 인사을 하는 것 같습니다

 
 
 
 
   

 

 

 

 

 

 

쉘부르의 우산/Les Parapluies de Cherbourg (1963)


 

 

 

 

 

 

 

 

 


     Cast: 
      Catherine Deneuve...Genevi?ve Emery
      Nino Castelnuovo .... Guy Foucher 

     

 

 

 


 

 

1957년 영프해협을 마주한 프랑스 노르망디 지방의 항구도시 Cherbourg. 우산가게를 하는 어머니 에메리(안 버논)와 살아가는 아름다운 아가씨 주느비에브(카트린 드뇌브)는 자동차 수리공 기(니노 카스텔누오보)와 사랑하는 사이. 프랑스령 식민지에서의 독립운동 여파로 기에게 소집영장이 날아온다.

출전 전날 밤 두사람은 2년후를 기약하며 밤을 함께한다. 집안 형편이 기울어 패물을 팔러 다니게 된 주느비에브는 보석상 주인 카사드(마크 미셀)의 청혼을 받는다.주느비에브는  어머니의 줄기찬 설득과 소식이 없는 기의 아이까지 잘 키우겠다고 하는 카사드와 결혼한다. 59년 기가 돌아온다. 다른 남자의 아내가 된 연인과 양부모의 죽음에 절망에 빠진 기는 예전부터 기를 혼자 사랑하던 마들렌(엘렌 파르네)과  결혼해 고속도로변에서 작은 주유소를 운영한다.

1963년 12월 눈내리는 저녁 단란한 가정을 이룬 기는 마냥 행복하고,아내 마들렌과 아들 프랑스와가 잠시 외출을 하는데 검은 색 승용차 한 대가 주요소로 들어온다. 기는 손님을 맞이하는 순간 쥬느비에브와 그녀의 딸을 발견한다. 주유하는 동안 기의 사무실에서 짧은 대화를 나눈다. 그녀는 어머니의 장례식을 치루고 아이와 함께 빠리로 돌아가는 중이였다. 서로의 안부를 묻고 서로 아이의 이름을 확인하는데 기의 아들은 프랑스와 쥬느비에브의 딸은 프랑스와즈다.

그들이 사랑한던 시절 훗날 두 사람이 아이를 나으면 남자아이면 프랑스와 여자 아이이면 프랑스와즈라고 하자던 약속을 쓸쓸히 떠올리는 듯 어색한 분위기에서 쥬느비에브는 "프랑스와즈가 당신을 많이 닮았어요."그리고  보겠냐는 질문에 문밖의 아이를 잠시 바라보다 거절하고 그녀는 마지막으로 행복하냐고 기에게 묻는다. 쓸쓸한 표정으로 기는 무척 행복하다고 말하고 옛 연인들은 돌아선다. 차가 떠난후 기의 아내 마들렌과 프랑스와가 돌아오고 아내와는 포옹을 아이와 눈싸움을 하며 행복한 가족은 주유소 안으로 들어가면서 영화는 끝이난다.

 

 

 

 

 

 

 

 

 

 Jacques Demy감독이 1963년에 만든 작품. Michel Legrand이 음악을 담당한 뮤지컬 영화로 프랑스의 오래된 문화에서 비롯된 세련미와 센스,  품위 그대로를 영상과 음악으로  보고  들을 수 있는 실험적 샹송 오페레타를 겸비한 불후의 시네 샹송 영화. 주제곡인 'La Gare'은  Laura Fygi, Bobby Darin, Astrud Gilberto등 많은 유명  가수들이  'I'll Wait For You' 란 제목으로 영어 번역된 노래를 열창해 뜨거운 사랑을 받았다.
                    

 

 

 

                          
                         며칠 전부터 저는 말없이
                                제 연인의 텅 빈 방을 보고있어요.
                                당신이 떠난 이후로
                                당신이 없는 그림자가 밤마다 저를 따라다니기도 하고
                                날마다 저를 피하기도 한답니다.
                                저는 그 누구와도 더 이상 만나지 않아요.
                                제 주위로 저는 빈자리를 만들었어요.
                                이제는 아무 것도 저는 이해하지 못한답니다.
                                왜냐하면 당신이 없다면
                                저는 아무 것도 아니기 때문이에요.
                                저는 모든 것을 포기했답니다.
                                왜냐하면 이제는 우리 사랑에 대한 환상을
                                저는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이에요...
                                노래를 들어보세요 :

                                아니에요, 저는 결코 당신 없이는
                                살아갈 수가 없을거에요.
                                당신이 없는 그 순간,
                                저는 아무 것도 할 수도 없고,
                                그로 인해 저는 죽게될테고
                                또한 존재하지도 않게 될거에요.
                                하지만 내 사랑,
                                저를 떠나지 말아요!
                                내사랑, 저는 평생동안 당신을 기다릴거에요.
                                다시 돌아와서 제 곁에 있어주세요.
                                제발 그렇게 해주세요.
                                저는 당신이 필요하답니다.
                                당신을 위해 저는 살고 싶어요.
                                오! 내 사랑, 저를 떠나지 말아요.

                                어느 역 플랫폼에서 그들은 서로 헤어졌답니다.
                                그들은 마지막 눈길을 건네며 서로 멀어져 갔답니다.
                                오! 저는 당신을 사랑해요... 저를 떠나지 말아요..

 

 


 ..

 

 

 

 

 


 

로마의 로마 의 휴일 

 

 

 

 

 

 

 

 

 

 

 

 

 

개봉/1953년9월00일
감독/월리암 와일러
출연/오드리 헵번
상영시간/119분
관람등급
장르/드라마.로맨스
제작국가/미국
제작년도/1953년

 


영화사에 길이 빛나는, 세기의 로맨스!!

왕실의 딱딱한 제약과 정해진 스케줄에 피곤해 지고 싫증난 앤 공주(Princess Ann: 오드리 헵번 분)는 거리로 뛰쳐나가 잠들었다가 어느 신사(Joe Bradley: 그레고리 펙 분)를 만난다. 그와 함께 아이스크림도 맛나게 먹고 신나게 스코터를 타고 다니면서 서민의 즐거운 생활을 맛 본 앤 공주는 신사와의 고별식이 다가오자 무척이나 아쉬워한다.

한편 거리에서 벤취에 잠든 여인을 만난 그 신사는 특종을 찾는 신문기자였다. 그저 불쌍한 여인인 줄 알았던 아가씨가 앤 공주임을 알아챈 기자는 굴러들어온 특종감을 만났으니 신나기 그지없었다. 아무 것도 모르는 앤 공주는 신사가 이끄는 대로 로마 거리를 즐겁게 따라다니면서 헤프닝을 벌여서 그야말로 특종 사진감이 되어준다. 친절하고 온건한 신사 죠에게 어느새 정이 든 앤 공주, 그리고 자신의 특종을 위해서 열심히 뛴 죠 기자도 이렇게 너무나 순순한 앤 공주에게 이끌리는 마음은 어쩔 수가 없었다. 그래서 특종을 목표로 찍었던 사진을 앤 공주를 위해 보도를 않기로 하고 기자회견 석상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건네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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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리쿠퍼의 우정 있는 설복

팻 분의 주제곡

 

가족과 종교. 케이커 교도들의 남북 전쟁에 대한 갈등

 

  

 

남북전쟁(The Civil War)주제로 한 영화

제서민 웨스트(Jessamyn West)의 베스트 셀러가 영화화 되었다.

 

  

 

 

 

제스(Jess Birdwell, 게리 쿠퍼 Gary Cooper 1901.5.7 - 1961.5.13)는

가장이며 퀘이커(quakers, 기독교의 일파) 교도로서

개인과 사회의 갈등을 가슴에 떠안고 있다.

 

 

 

 

 

 

 

 

 

퀘이커 신도들의 예배모습.

목사가 따로 없이 누구든지 영감이 오면 말씀을 전한다.

 

 

남북전쟁은 퀘이커 공동체를 갈등하게 만든다.

 

 

 

 

장남 조쉬(Josh Birdwell, 앤서니 퍼킨스 Anthony Perkins 1932 - 1992)가

퀘이커도 가족과 공동체를 지키려면 전쟁을 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엘리자는 아들에게 마태복음 5:39절의 '오른뺨을 때리거든 왼뺨도 돌려대라'는

성경말씀과 자신들 전통을 강조하면서 절대로 믿음을 지키라고 말하지만,

아들은 'turn the other cheek' 대신 총을 갖고 싸우는 대항적 양심을 택한다.

 

여기서 양심 문제가 등장... 퀘이커들이 양심에 따라서 평화를 지켜왔지만,

전쟁이 발발하자 조쉬와 같은 새로운 양심선언이 등장하게 된 것이다.

 조쉬는 위급상황에서 적군의 등을 쏘고 울지만 자신도 부상을 입는다.

 

 

그렇게 전쟁은 공동체의 신념과 다른 또 하나의 긴장을 몰고 왔다.

실망하는 아내에게 제스는 "사람이 자기 양심에 따라 살지 않는다면

차라리 죽느니만 못하다"고 하면서 총을 잡아야 되는 상황을 설명한다.

 

 

 

 

옛날 향수를 느끼게 하는 맥과이어(1916.6.14 – 2001.9.13).

 

 

조쉬가 부상당하자 아버지 제스는 결국 총을 잡는다.

 

사람이 자기 양심에 따른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모든 사람의 평범하고 보통적인 자유와 행복을 위해서라면,

절대 평화를 신봉해야 한다는 퀘이커 신앙이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Jessamyn West (1902.7.18-1984.2.23)

저자 자신도 인디아나 출신이면서 어릴 때에 퀘이커로서 자라났다.

"The past is really almost as much a work of the imagination as the future."
 

 

 

시대를 따라서 양심의 법이 변하기도 하는 모양...

어쨌든 남북전쟁은 60만이라는 엄청난 희생 댓가를 치루면서

종결되었고, 구시대 대신 새 질서를 만드는 계기가 되었다.

 

 

게리 쿠퍼 [Cooper, Gary, 1901.5.7~1961.5.13]
  
  
미국 몬태나주(州) 헬레나에서 출생하였다. 영국에서 보통교육을 마치고 미국의 아이오와주 그루넬대학교를 졸업한 후 만화가로 출발, 1925년 엑스트라로 영화계에 들어갔다. 처음에는 단순한 장신(長身) 미남배우였으나 수줍어하는 동작이 지니는 인간적인 매력 때문에 점차 연기 영역을 확대해 나갔다.
  
  《7일간의
휴가》(1927), 《모로코 Morocco》(1930), 《시가(市街) City Streets》(1931), 《무기여 잘 있거라 A Farewell to Arms》(1933), 《어느 일요일의 오후》(1932), 《생활의 설계》(1934) 등에 출연하였고 《오페라 하트》(1936) 등 코미디 영역에서도 뛰어난 연기를 보였다.
  
  《평원아(平原兒)》(1937), 《서부의 사나이 The Westerner》(1958)에서는 서부극의 인물에 인간미를 느끼게 하였고 《요크 중사 Sergeant York》(1941)와 《하이눈 High Noon》(1952)으로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두 번 수상하였다. 《마천루(摩天樓) The Fount Cinhead》(1949), 《우정 있는 설득》(1956), 《숨겨진 정사(情事)》(1958)에서는 만년의 원숙한 연기를 보여 주었다.

 

 

이름/안소니 퍼킨스 (Anthony Perkins)
출생/1932년 4월 4일
사망/1992년 9월 12일
작품/슬래셔 영화의 흥망성쇠, 미녀 연쇄 살인..

 

 

 

 

 

 
 
 
 
 
 
 
   

   서부 영화음악을 잘 만들기로 소문이 난 러시아 이민 출신의

드미트리 티옴킨(디미트리-Dimitri Tiomkin. 1894-1979, 우크라이나)


또 다시 주제곡을 만들었는데, 그가 만든 수많은 명곡들,

‘하이 눈(High Noon. 1952, 아카데미상 수상 곡)’,

‘비상 착륙(The High And The Mighty. 1954, 아카데미상 수상 곡)‘,

‘자이언트(Giant. 1956)’,

‘오케이목장의 결투(Gunfight At The OK Corral. 1957)‘,

‘로하이드(Rawhide. 1959)‘,

‘리오 브라보(Rio Bravo. 1959)’,

‘알라모(The Alamo. 1960)‘ 등등의 주제곡들 못지않게,

이, ‘내가 사랑하는 그대(Thee I Love)‘ 라는 곡도 상당히 유명한 곡으로서

티옴킨 음악의 전반적인 특징의 하나인 그 따스함이 참으로 잘 배어 있다



1957년도 미국 아카데미상의 최우수 음악상의 후보작이기도 했던 이곡은

특히 당시의 유행 음악계에서 최고의 미성가수로 손꼽히던

팻 분(Pat Boone. 1934, 미국 잭슨빌)
이 불러

첫 장면에서부터 잔잔하게 흘러나오면서,

평화로운 버드웰 가족의 일상을 대변하였는데(아래 노래 +가사)

연주음악(위의 음악)으로도 1960년대까지 상당한 인기를 얻었었다.

총잡이라든가 무법자들이 출연하지 않고,

또 막 쏴죽이고 죽는 그런 핏빛 나는 서부 영화가 아니면서도,

한 퀘이커 신도의 가정을 통해 그 줄거리 전개에서 넉넉한 서부 영화의 낭만을

전해 주는 것이 역시 (이번에는 제작까지 직접 한) 거장 감독,

윌리엄 와일러(William Wyler. 1902-1981,독일)답다고 할 수 있겠는데,

‘서부의 사나이(The Westerner. 1940)’,

‘빅 컨츄리(The Big Country. 1958)’ 과 함께

그가 만든 몇 안 되는 서부극의 수작으로 손꼽히고 있다.

여하튼, 이런 잔잔한 서부극의 맥이 할리우드에서 끊어진지도

무척이나 오래되었는데, 그래서인지 그 희귀성 때문일까?

지금은 더욱 더 귀한 작품이 되었지만,

그나저나, 이제 이런 스타일의 서부영화는 결코 다시 나올 수 없는 것일까?


 


* Pat Boone 의 ‘Thee I Love’ 의 가사 + 노래:



Thee I love, more than the meadow so green and still

More than the mulberries on the hill

More than the buds on the May apple tree, I love thee

Arms have I, strong as the oak, for this occasion

Lips have I, to kiss thee, too, in friendly persuasion

Thee is mine, though I don't know many words of praise

Thee pleasures me in a hundred ways

Put on your bonnet, your cape, and your glove

And come with me, for thee I love


* Anthony Perkins 과 Johnny Mathis 의 ‘Thee I Love’ :



* 영화 장면 모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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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랑 은 아름다워라

 
 

517

 

 

 

 

 

 

 

 

 

 

 

 

 

 

 

 

 

 

 

 

 

 

 
 그리고, 이영화가 비극으로 내달리게 하는 직접적인 사건이 한국전쟁이라는 점이 이 영화가 우리에게 친숙할 수 있는 또하나의 이유가 된다.  두사람의 사랑이 깊어갈 즈음 한국전쟁이 발발하고 마크가 종군기자로 한국전쟁의 소용돌이에서 전사함으로써 두사람의 사랑은 이루어 질듯 이루어 지지 않는 안타까운 결말을 맞이하게 된다.
두사람 간의 사랑을 가로 막는 장애물이 다름 아닌 우리의 비극이었다는 것이 극중 한 수인의 개인적인 비극을 우리, 적어도 나에게도 전혀 간접적이지만은 아닌 비극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원인이 될 수 있는지도 모르겠다.

마지막으로 이 영화의 주제곡 또한 너무나도 친숙한 멜로디로 묘한 추억을 불러 일으킨다.
처음 영화가 시작하면서 흘러나오는 이 감미로운 러브 송은  작품 중간 중간 두 연인의 사랑
이 깊어지는 순간에도 어김없이 삽입되어 애틋한 감정을 불러 일으킨다.

마지막 언덕 장면에서도 그렇지만, 특히, 그녀의 친구 집 테라스에서 이국적인 홍콩의 저녁
바다를 배경으로 라디오에서 흘러 나오는 이곡을 배경으로 두 연인이 춤을 추는 장면은 영화 중 가장 아름다운 장면의 하나일 것이다.
 

원제:Love is a many splendored thing
감독:헨리 킹
출연:윌리엄 홀덴, 제니퍼 존스
 
 1957년 외국 남자배우 베스트 텐
01.록 허드슨(2,511표).
02.몽고메리 그리프트(1,953표).
03.제임스 딘(1,581표).
04.버트 랑카스타(1,458표).
05.월리암 홀덴(1,302표).
06.케리 쿠퍼(930표).
07.빅타 마추어(485표).
08.토니 커티스(455표).
09.타이론 파워(372표).
10.존 웨인(289표).

1957년 외국 여자배우 베스트 텐
01.엘리자베스 테일러(3,906표).
02.잉그릿드 버그만(3,813표).
03.킴 노박(1,302표).
04.데보라 카(744표).
05.지나 로로부리지다(588표).
06.비비안 리(558표).
07.안 부라이스(372표).
08.수잔 헤이워드(355표).
09.마리아 셀(239표).
10.오드리 헵번(139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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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SHINN · Slm&m
글쓴이 : SHINN · Slm&m 원글보기
메모 :

 

실화의 명작 에디듀친 의 피아니스트

애심

 

 

     

 

 

   타이론 파워 . 출생 -1913년5월2일-사망-1958 년 12월23일 

 

피아니스트로써의 꿈을 이루고저 뉴욕에 온 듀친은 센트럴 파크 카지노에 취직하려 하나 거절당한다. 마침 그곳 홀에 있던 그랜드 피아노에 걸터 앉아 쓸쓸한 마음으로 연주하자 이를 들은 마조리는 이날 만찬에 듀친으로 하여금 피아노 연주를 맡게 해준다. 연주는 성공하고 그녀의 호의로 라이스맨 밴드의 일원으로 취직한 그는 인기도 상승하여 확고부동한 피아니스트로 자리 매김한다. 이들 두 사람은 어느 덧 사랑으로 맺어저 결혼을 하게 되지만 마조리는 아이를 낳다가 세상을 떠나고 만다. 비관하던 듀친은 해군에 입대하고 생과 사의 갈림길에서 슬픔을 잊으려 한다.

 

 

 

 

 

 

 

 

 

 

 

 

 

 

 

출연 - 16 작품
1957 정부   
1956 애심
1955 야성녀
1955 웨스트 포인트
1951 황야의 역마차 
 - Tom Owens
1950 흑장미
1946 면도날
1942 검은 백조
1942 디스 어보브 올
1941 혈과 사
 - Juan Gallardo
1940 쾌걸 조로
1939 무법자 제시 제임스
1938 마리 앙트와네트
1938 수에즈
1938 알렉산더의 랙타임 밴드
1937 인 올드 시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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