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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석 신부 이야기 

  

신부님 평안히 가십시요 영원한 안식 누리소서.

 

 

 

 

지난 4월 11일, KBS스페셜시간에 『수단의 슈바이처, 쫄리 신부님』라는 다큐멘터리를 보았다.

이 프로를 보면서 얼마나 눈물을 흘렸는지 모른다.


의사이면서 의사로서 풍요롭고 보장된 삶을 버리고 사제가 되었고, 사제가 되어서는 역시 안일한 사제의 길보다는 오랜 내전으로

 피폐해질 대로 피폐해진 땅, 아프리카의 오지 중에 오지 불모의 땅, 수단의 남부지방 톤즈에서 聖者의 삶을 살다가 47살의 젊은 나이에

 암으로 돌아가신 이태석 신부에 대한 프로였다.


그 프로를 보고 그 분이 유일하게 지었다는 책, 『친구가 되어 주실래요?』를 구입하여 읽었다. 그런데 그 분의 삶이 다큐멘터리

영화로 나온다고 해서 『친구가 되어 주실래요?』를 다시 꺼내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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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으로 태어나서 세상에 도움은커녕 해만 끼치다 가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凡人들이 감히 쳐다보기에 너무나 눈부신 아름다움을

세상에 남기고 가는 사람이 있다.  


분명 수단의 땅이면서 그곳에 가려면 자기나라의 首都가 아닌 옆 나라 케냐를 통해야 갈 수 있는 곳, 그래서 모든 생필품 역시

케냐에서 조달하여야 하는 곳, 南수단의 오지 톤즈. 그곳에 2001년 한국인 신부가 나타났다.


가톨릭 대학 시절 세상에서 가장 소외된 곳, 어려운 곳에 가서 봉사하겠다던 결심을 실천하고자 케냐를 찾았으나 그곳이 자신이

생각했던 것보다는 낫다고 하여 오랜 내전으로 얼룩진 수단의 남부지방 톤즈를 그의 사역지로 정하고 찾은 것이다.


그 지방의 열악한 사정은 말로, 글로 표현하기가 어려울 정도이다. 섭씨 45도에서 50도를 넘나드는 뜨거운 기후, 전쟁으로 모든 것이

 파괴되어 병원은 물론 교육 등 사회기본시설이라고는 하나도 없는 곳, 무엇보다 종족간 불신과 증오로 가득 찬 곳,

아무리 봉사도 좋지만 어찌 그런 곳을 택하셨을까 읽을수록 나로서는 존경스럽다기보다는 안쓰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태석 신부가 그곳에서 제일 먼저 한 일은 의료혜택이라곤 받아본 적이 없는 환자들을 위한 병원을 짓는 일이었다. 1년여 만에 병원을

짓는 일을 마무리할 때쯤에 학교를 짓기 시작했다. 하루 종일 빈둥거리며 노는 젊은이들을 위해서였다. 성당은 맨 나중에 지었다.


『요즈음은 “예수님이라면 이곳에 학교를 먼저 지으셨을까, 성당을 먼저 지으셨을까?”라는 생각을 자주 한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학교를 먼저 지으셨을 것 같다. 사랑을 가르치는 성당과도 같은 거룩한 학교, ‘내 집’처럼 느껴지게 하는 정이 넘치는 학교,

그런 학교를 말이다.』


그곳에는 한국에선 볼 수 없는 아름다운 것 두 가지가 있는데, 금방 쏟아져 내릴 것 같은 밤하늘의 무수한 별들과

손만 대면 톡하고 터질 것 같은 투명하고 순수한 아이들의 눈망울이라며 눈물과 감동 없이는 읽을 수 없는 8년 동안의 이야기들이 적혀 있다.


그런 그가 암에 걸렸다. 암에 걸린 줄도 모르고 봉사에만 열중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곳의 사정을 알리고 필요한 후원을 얻으려

 2008년 잠시 귀국하였다가 주변의 권유로 건강진단을 받았더니 대장암 말기란 진단을 받은 것이다.


결국 그는 톤즈로 돌아가지 못하고 올 1월에 선종하였다. 그가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그곳 사람들의 염원을 뒤로 하고 하늘로 떠난 후

그가 운영하던 톤즈의 모든 시설은 버려지다시피 되었다. 뒤늦게 가톨릭과 후원단체에서 나섰지만, 이태석 신부의 빈자리를 채우기에는

너무나 부족하였다.


마침 이태석 신부의 이야기가 영화화되어 개봉되었다기에 보러 나섰다. 오랜만에 서울, 그것도 명동으로 나들이를 나갔다. 영화관에

도착했을 때는 뒤늦게 내리는 가을비에 온몸이 흠뻑 젖었다.


관객은 십여 명 안팎, 영화관은 텅 비었다.

하기야 요즘 이런 영화를 보러 오는 사람이 어디 있을까 예상은 했지만, 너무나 쓸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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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린에는 “울지마 톤즈” 라는 영화 명이 뜬다. ‘수단의 슈바이쳐 이태석 신부’ 라는 글자도 보인다. KBS 가 제작한 다큐영화이다.

영화는 책 내용과 달리 이태석신부가 암투병을 하는 장면부터 시작되었다. 그리고 그의 어린 시절에서 신부가 되기까지 과정이 나오고,

 이어서 수단에서의 모습으로 이어졌다.

오랜 내전으로 모든 것이 파괴된 저주의 나라 수단,  희망이라고는 찾아볼래야 찾아볼수 없는 절망의 땅 톤즈, 이태석신부는 다른 곳도

 많은데 굳이 그곳에 간 이유는 ‘지극히 작은 자에게 한 것이 곧 나에게 한 것’이라는 예수님의 말씀 때문이라고 했다.


이태석 신부가 떠난 후 목자를 잃은 톤즈의 양들...

생전에 그가 만든 어린 학생들의 브라스 밴드가 톤즈거리를 추모행진하는 모습...

그리고 온 마을 사람들이 이테석신부의 사진 앞에서 석별의 정을 나누는 광경....

모두가 가슴을 울리는 진한 감동이었다.

영화가 끝나고 나선 명동거리는 영화의 내용과는 너무나 다른 광경이었다.

얼마 만에 찾은 명동거리인가? 20년도 넘었을 것 같다.


휘황찬란한 명동거리, 더구나 요즘 일본인 관광객들이 가득한 명동에서 예전 모습은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마치 도쿄의 어느 거리를

온 것 같은 착각마저 들었다.

흔히 사람들은 세상에 해를 끼치는 사람도 많은데, 왜 이런 훌륭한 일을 하는 분을 데려가시는 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한다.

그것도 한창 일할 젊은 나이에 말이다. 그리고는 우리가 모르는 깊은 뜻이 있을 것이라 생각하는 것이 고작이다.

나 역시 돌아오면서 그런 생각으로 마음이 무거웠다.


어쩌면  하나님은 그리도  매정하고 무정하신가?

그런 분을 벌써 데려가시다니....

소외된 사람, 돌보아 줘야할 사람들이 이리도 많은데...

세상 사람들의 무관심과 불평등에 대해 곰곰이 생각했다.

그리고 나름대로 해석을 해보았다.


그분은 그분 나름대로 이 세상에서 하실 몫을 다 이루었기에 떠난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분의 떠남을 아쉬워하고 이해할

없다고만 하고 있을 것이 아니라, 이제 그 뒷일은 남은 사람들의 몫이라는 생각도 했다. 그렇게 생각하니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그리고 이 땅에 아름다움을 남기고 하늘의 부름을 받은 이태석 신부의 명복을 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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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닷컴 블로그 소망님의 글에서 복사 

 

 

 

 

 

 

톤즈에서 이 신부는 쫄리 신부라 부릅니다. 세례명 요한(John)에 성 이(Lee)씨를 합쳐 그들의 발음으로 부른 애칭입니다. 폐허가 된 학교 건물을 다시 쌓아 학생들을 가르치고, 브라스밴드를 만들어 음악을 통해 전쟁과 가난으로 상처받은 어린이들을 치유해 나갔다. 45도를 오르내리는 무더위 속에서 원주민들은 잘 해야 하루에 수수 죽 1끼로 끼니를 때운다는 수단에서 사제의 역할보다는 의사로서 활동을 많이 했습니다. 내전으로 불안한 나날 가운데 진료소를 운영하면서 날마다 방문하는 100여명의 환자들과 결핵, 나병 등 장기 입원환자를 돌보고, 지속적인 예방접종 사업과 일주일에 한 번씩 여러 오지마을을 찾아다니며 이동진료를 8년 동안 하다가 몹쓸 병에 걸린 것입니다. 그가 찾아가는 날은 마을의 모든 주민이 모이는 날이 되었다고 합니다. 아픈 사람들만 모이는 것이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정이 그리워 모이는 것이지요. 아이들이 가장 많이 모이고, 신부님을 가장 좋아했다고 합니다. 아이들은 신부님이 오시면 ‘쫄리, 쫄리’라고 연호하며 몰려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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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이 신부는 남수단의 톤즈(Tonj)라는 도시로 파견되었다. 아프리카 수단에 대해 간략히 알아보자. 수단은 23년째 내전중이고, 북쪽의 아랍계 정권이 수단의 2/3를 차지하고 있다. 수단의 원주민들은 제 고향에서 쫓겨나 척박한 땅인 남쪽으로 이주해야 했다. 척박한 남쪽 땅에 석유가 매장된 것을 알게 된 것이 비극의 씨앗인지도 모른다. 북수단은 원주민을 남수단에서마저 내쫓으려 하자, 북쪽의 아랍계 정권에 맞서 남쪽 주민들이 대항하게 되었고 그들이 무장을 하여 ‘반군’이 됩니다. 미국은 남수단에 매장돼 있는 석유를 확보하기 위해, 북수단 아랍계 정권을 지원했지만 남수단 반군의 저항이 만만치 않아 지금까지 내전이 장기화된 것이죠. 북수단은 남수단 사람들을 굶어 죽게 하기 위해 남부 지역을 완전히 봉쇄했기 때문에, 남쪽 사람들은 북쪽에서 식품이나 생필품을 하나도 들여올 수 없고, 모든 물자는 남쪽으로 2800km 떨어진 케냐의 나이로비에서 육로로만 들여옵니다. 내전은 장기화되고 세계 여론도 나빠지자, 미국은 최근 남북 수단의 평화회담을 중재하겠다고 나섰지요. 병 주고 약 주는 셈이지요. 내전은 3년째 소강상태이고, 북수단 정권은 평화회담을 하면서도 계속 살육을 저지르고 있지요. 지금까지 3300만의 인구 가운데 200만 여명의 남수단 원주민이 죽었고, 300만 여명이 제 고향에서 쫓겨났고, 20여만 명이 국경을 넘어 유랑민이 된 곳이 바로 남수단입니다.

14일 아침마당에서

이금희도 울고 저자신도 감동하여 검색한 타 블로그와 성당 카페 사진과 글입니다 


 

 

 

 

 

 

 

 

 

 


 
극장 개봉한 KBS 다큐멘터리 '울지마 톤즈'(감독 구수환)가 관객 10만 명을 돌파했다고 KBS가 13일 밝혔다.
KBS는 또 '울지마 톤즈'가 LA
한인회의 요청으로 LA CGV에서 다음달 12일부터 상영된다고 전했다.
'울지마 톤즈'는 지난 4월11일 KBS 1TV로 방송된 'KBS스페셜 - 수단의 슈바이처'를 영화로 재편집한 작품이다.
지난 1월 대장암
으로 48세에 별세한 고(故) 이태석 신부의 삶과 죽음, 수단에서의 봉사활동을 다룬 이 작품은 지난 9월9일 전국 13개 상영관에서 개봉했다.

KBS는 "별다른 홍보가 없었음에도 입소문으로 몰려드는 관객으로 평균 객석 점유율 75%라는 놀라운 실적으로 개봉 4주차에 개봉관이 54개관으로
확대됐다"며 "한 달 만에 10만 관객을 돌파하는, 다큐멘터리 영화로는 보기 드문 기록을 세우면서 점점 더 많은 사람의 발길을 스크린으로 이끌고 있다"고 말했다.

 

2010년 12월 24일 뉴스

 

故 이태석 신부가 2010 KBS 감동 대상 시상식에서 대상을 수상했다.

고 이태석 신부는 12월 23일 방송된 2010 KBS 감동대상 시상식에서 대상을 받았다. 상은 고 이태석 신부의 형인 이태영 신부가 대리 수상했다.

 

이태영 신부는 "오늘은 이태석 신부가 정말 보고 싶은 날이다. 이태석 신부도 하늘나라에서 지금 이 순간을 기뻐하리라 믿는다. 이태석 신부를

사랑하고 기억해주는 모든 분에게 다시 한번 감사인사를 드린다. 많은 분이 감동을 받은데 그치지 않고 사랑 나눔을 이어받아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이 조금 더 따뜻하고 아름다운 세상이 됐으면 한다"고 전했다.

한편 2010 KBS 감동대상 시상식은 한 해 동안 KBS의 모든 프로그램에 출연한 사람 중 시청자에게 감동과 희망을 준 주인공을 선정하고 포상하는

프로그램으로 출연자 중에서 시청자들에게 감동의 눈물을 선사한 주인공들을 시상하는 자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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