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백 장군은 2020년 7월 별세 전 “전사한 전우들과 함께하고 싶다”는 뜻에
따라 전투복을 수의(壽衣)로 입고 대전현충원에 안장됐다
관 위에는 다부동 등 8대 격전지에서 모은 흙도 뿌려졌다
문재인 대통령과 당시 여당 지도부는 그의 영결식에 불참했다
일부 단체는 안장식 때 반대 집회도 했다
보훈처는 지난 2월 백 장군 묘 안내 표지판을 철거하기도 했다

6·25전쟁에서 일궈낸 업적은 미군들로부터도 존경을 받는다
역대 주한미군사령관들이 백 장군을 향해 '존경하는
백선엽 장군'이라는 경칭을 붙이는 게 전통이 됐다
2013년엔 명예 미8군 사령관에 임명됐고, 2016년엔
한국인 최초로 미8군사령관 이·취임식에 초대되기도 했다

백남희씨가 서울 용산 전쟁기념관 조형물을 배경으로 섰다
백씨는 “6·25전쟁 50주년을 기념해 지난 2003년 아버지 백선엽 장군
주도로 3년 만에 완성한 작품”이라고 했다. / 이신영 영상미디어 기자
해리스 대사는 2018년 백 장군 생일파티 당시
찍은 사진을 함께 게재하고 "지도자이자 애국자이며
정치가였던 백 장군은 현대 한미 동맹 구축을 주도했다"고 설명했다

백 장군은 전날 오후 11시 4분께
100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많은 사람들이 한국전쟁의 시작일인 6월25일에
대해서는 잘 알고 있지만 휴전협정이 맺어진 7월27일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한다
또한 7월27일이 유엔군 참전을 기념하는
날임은 더욱 생소하게 느껴질 것이다

1950년 6월25일 새벽. 우리는 북한군의 기습적인 공격을 당했고
국제연합에서는 안전보장이사회 소집이 긴급히 진행되었다
그 결과 유엔군 파병이 결정되었고 세계 각국에서
수많은 군인들이 한반도로 오게 되었다
맥아더 장군으로 유명한 인천상륙작전 역시
유엔군의 도움으로 이뤄낸 성과였다
만약 유엔군의 도움이 없었더라면 오늘의 우리나라는
전혀 다른 국면을 맞이했을지도 모른다

이 말은 다시 말해서 6.25전쟁은 한국군만의
전투가 아니었다는 것이다
한국군만 희생당한 것이 아니라 각기 다른 국적의
수많은 유엔군 역시 희생당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전투 병력을 지원한 16개국과 의료진과 의약품 등을
지원한 5개국을 포함, 총 21개국 연인원 195여만명이
한국을 방어하기 위해 참전했고
15만여명의 유엔군 희생자가 발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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