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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종차별 넘은 숭고한 희생 나이팅 게일에 가려진 진정한 백의의천사입니다

7월 4일 오전 방송된 MBC'신비한 TV 서프라이즈'에서는 '백의의 천사' 나이팅게일 못지않은 크림전쟁의 숨은 공로자인 흑인 간호가 메리 시콜에 대한 이야기가 그려졌다.영국 런던에 위치한 한 액자가게에서 초상화가 발견됐다. 그림 속 노년의 흑인 여성은 왼쪽 가슴에 터키, 영국, 프랑스에서 받은 3개의 훈장을 달고 있었다. 이 여인의 이름은 자메이카에서 온 메리 시콜이었다. 메리 시콜은 1805년 자메이카에서 태어났다. 그녀의 아버지는 스코틀랜드인이었고 어머니는 자메이카 흑인인 물라토였다. 메리 시콜은 노예로 취급됐고 약초와 질병에 대한 지식이 많은 어머니에게서 전통요법을 전수 받았다.그리고 성인이 된 메리 시콜은 백인남자인 호레이쇼 시콜과 결혼했지만 남편은 요절했다. 이후 재혼하지 않은 메리 시콜은 의학지식을 쌓는데 매진했고 마을 사람들은 당시 어떤 의사보다 메리시콜을 더 신뢰했다.자메이카 당국은 메리 시콜에게 군대에서 병원을 운영해 달라고 요청했고 메리 시콜은 자메이카 군병원에서 일하게 됐다. 이후 1853∼1856년 '크림전쟁'이 발발했다. 이에 메리 시콜은 전쟁터로 나가 다친 병사들을 간호하기로 마음먹었다.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영국으로 건너가 간호단에 지원했지만 빈자리가 없다는 이유로 번번히 거절당했다. 모든 영국의 간호단에서는 메리 시콜이 흑인이기 때문에 일손이 부족해도 메리 시콜을 쓰지 않았다.결국 메리시콜은 자비를 털어 배를 타고 크림반도로 향했다. 전쟁터 후방에 차려진 간호단을 찾아간 메리 시콜은 또 다시 거절을 당했다. 얼마 후 메리 시콜은 최전방에 직접 치료소를 차렸다. 메리 시콜은 자신이 알고 있는 모든 지식을 동원해 치료법을 개발하려 노력했고 이로 콜레라까지 치료하기에 이르렀다.메리 시콜은 사비를 털어 음식을 마련해 병사들을 돌보았고 이는 병사들에게 감동까지 전했다. 죽음에 무방비로 노출된 병사들이 홀로 쓸쓸하게 죽어가는 현장에서 가족 대신 병사들의 마지막 순간을 지켰다. 당시 병사들은 그녀를 어머니라고 부를 정도였다. 참혹한 정잰터에서 메리 시콜은 수많은 병사들의 어머니였던 것이다.크림전쟁 이후 개혁과 도덕주의를 표방한 영국이 나이팅게일로 인해 간호사의 불결하고 잔인한 이미지를 바꾸기 위해 나이팅게일을 적극적으로 알렸고 메리 시콜은 현실에서 외면당했다. 메리 시콜은 자신의 재산을 쏟아 부어 치료소를 운영하며 병사들을 위해 최전방을 누빈 희생적인 인물이었다. 때문에 크림전쟁에 참전한 병사들은 나이팅게일과 함께 메리 시콜도 인정 받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메리 시콜의 존재는 나이팅게일에게 가려져야 했다.종전 후 병사들은 메리 시콜의 집을 매일 찾아가 그녀의 노후를 돌보며 감사의 마음을 전했고, 메리 시콜의 존재를 알리기 위해 노력했다. 초상화에 그려진 3개의 훈장은 병사들이 영국과 연합국이던 국가를 찾아가 메리 시콜을 추천해서 수여됐던 훈장이었다. 초상화는 이 때 메리 시콜의 존재를 알게 된 화가가 그렸던 그림이었다.정작 자신의 몸을 돌보지 못했던 메리 시콜은 76세의 나이로 숨졌다. 메리 시콜의 초상화는 수십년 동안 분실 됐다가 어이없게도 액자의 뒤에 다른 그림을 보호하는 종이로 사용되고 있는 것을 우연히 발견했다. 이로 메리 시콜은 다시 주목을 받았고 세계 전역에서는 메리 시콜의 업적을 재평가해야 한다는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그녀의 초상화는 현재 영국 런던의 국립 초상화 갤러리에 보관되어 있다.

 

 

 

 

 

 

 

 

 메리 시콜은 왼쪽가슴에 훈장을달고있었다

거것도 세개씩이나  그거진짜 훈장맞아요? 화가는 말했다. 노파는 수집게 웃으면.훈장에 얽흰

이야기를 들려주었고 화가는 노파를 그리기 시작했다.노파의 어머니는 약초로 아픈 사람들을 치료 해주곤했다

어머니로 부터 생약과 치료에 대해 배운그녀는 결국 성인이되어서 자신의 고향인 자메이카의  군병원에서 일하게된다

그러던 어느날 크림전쟁이 발발 했다. 영국은 전쟁부상병들을 돌볼 간호사를 모집하는 광고를 대대적으로 내게된다

아 그광고 저도 보았으요 화가는 윤곽을 잡으며 맞장구를 첬다 간호사 모집광고을 본 메리시콜은 곧장 배에 몸을 싣는다

그동안 배우고 익흰경험이 전쟁터에서 꼭 필요한 거라는 확신이 있었기떼문이다.하지만 메리시콜은 간호단 면접에서 번번이

떨어졨다.매번 들어갈 자리가 없다는 말만 듣게될 뿐이다. 간호사가 턱없이 부족해서 죽아가는 사람이 많았잖아요

하지만 메리시콜은 미소만 지을뿐이다.자신이 매번 떨어진 이유를 잘 알기떼문이다.식민지인 자메이카에서 흑인을 일손이 달려도

영국 입장에서 결코 달가워 할리가 없다.결국 전재산을 털어서 홀로 크림반도로 가게된다 .화가의 질문은 그곧에서 나이 팅케일을

만났습니까? 아니 나는 다른곳에있었지"다들 꺼려한 최전방에 치료소를 차릴수 박에 없었다.최전방 치료소 에서 응급 치료를 한 환자는

후방에 위치한 나이티에일의 병원으로 보네어 젔다.후방과달리 약이부족했든 최전방에서 대부분의경우 메리시콜이 할수있는

일이란 죽어가는 병사들의 손을잡고 그들의 마지막을 함께하는 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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