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풍경

부산 영도 태종대 지하벙커

영화 감독 2021. 2. 22. 03:46

 

 

 

 

 

 

 

 

 

 

 

코로나 감염증 없는 지난 

초여름 태종대 전경 입니다

 

 

 

 

 

 

 

 

 

부산 영도구 태종대 정상 부근에 일제강점기 지하벙커로 추정되는

굴을 봤다는 것. 무려 40년 전의 기억입니다
제보자의 희미한 기억 속 지하벙커는

견고한 콘크리트로 만들어졌습니다

1개 중대가 생활할 만큼 내부가 넓었고

가마솥 같은 것도 보였다고. 관리를 해온

것처럼 쓰레기도 없이 깨끗했다고 합니다

 

 


한 눈에 봐도 역사적 가치가 엿보였지만, 이에 대한 안내표지는 없었다고 합니다

취재팀이 수소문해봤지만, 태종대 굴에 대한 구체적인 기사나 자료를 찾기 어려웠습니다
1980년대 목격담. 제보자는 이미 부산을 떠났습니다. 지하벙커가 실존하는지

그 정체가 무엇인지 직접 확인해보겠습니다
20일 부산 태종대 산책로. 제보자 증언에 따라 정상 부근 '쉼터'를 찾아 나섰습니다

얼마 뒤 거짓말처럼 태종사 건너편에 운동기구가 있는 쉼터를 발견했습니다

 

 

 

 

그러나 이후 수색은 막연했습니다. 주변을 둘러봐도 수풀과 시냇물, 도로뿐. 함께

산을 타던 등산객도 대부분 "처음 들어본다"고 했습니다. 30여 분간 돌고 도는 중 만난 50대 등산객

저기 시냇물 쪽에 석빙고 같은 게 있다더라고요. 아주 어렸을 때라 정확한 지점은 모르겠네요."

곧장 쉼터 밑 경사면을 지나 맞은 편을 둘러봤습니다. 그리고 발견된 의문의 '돌담'.

그러나 기대와 달리 거대한 둥근 돌로 담을 쌓은 작은 초소에 불과했습니다

특별한 입구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40년 지나 흙이 쌓였을까. 수풀에 가려졌을까. 실망과 허탈함이 감도는

찰나 20~30m 떨어진 곳에서 정체불명의 땅굴이 포착됐습니다
입구를 감싸는 대형 콘크리트 난간. 성인 키보다 높은

거대한 출입구. 제보자가 말한 그곳이 확실했습니다


아쉽게도 내부는 벽돌로 막혔습니다. 누가, 어떤 이유에서

막았는지 알려진 바가 없습니다. 태종대유원지사업소 측도

이야기만 들었을 뿐, 내부를 본 적이 없다고 합니다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로는 일제강점기 군사기지 용도로 쓰였다고

태종대가 문화재보호구역이다 보니 내부 확인을

위해 벽돌을 부수려면 문화재청 허가가 필요했습니다.

 

 

 


입구는 가로 3m, 세로 4m 정도의 크기로 보였습니다. 위쪽에

벽돌 1~2개가 빠져 내부를 들여다볼 수 있는 틈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워낙 틈이 좁고 어둡다 보니 정확히

내부 구조를 식별하기 어려웠습니다

빛이 스며드는 내부 앞쪽만 봤을 때는, 통나무로 된 가림막이

입구를 한 번 더 막고 있었습니다

틈으로 소리를 질러 보니 크게 울려 퍼지는 것으로 보아

깊이가 꽤 있는 것으로 짐작됐습니다

취재 결과 이곳은 일제강점기 '해안 포진지' 또는 '탄약고'였을 가능성이 큽니다

현재 용호동 오륙도, 가덕도 등지에는 대한해협을 봉쇄하기

위해 일제강점기 때 만든 포진지가 뚫려 있습니다. 러·일 전쟁에서

승리한 일본이 강대국의 본토 공격에 대비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실제 태종대는 전쟁 때마다 부산의 해안 군사요충지 중 하나였습니다

김한근 부경근대사료연구소 소장은 “오륙도~중구 영주동~태종대를

삼각 편대로 해, 북항으로 들어오는 연합군을 표적으로 삼았을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습니다.

주경업 부산민문화연구원 대표는 태종대 땅굴에 대한 놀라운 이야기를 꺼냈습니다
"한 15년 전쯤 됐을 겁니다. 영도구 동삼동 주민이 제보가 왔는데

자신이 직접 그 땅굴을 팠다고 하더이다. 200명 정도 주민이

강제징용이 됐는데, 나머지는 땅굴 안에서 총살당하고

자신만 도망쳐 나왔다고 그분 말로는 땅굴이 태종대 해안까지 뚫려 있어

뱃고동 소리가 내부에서 크게 들렸다고 합니다

당시 제보자 딸·사위 등과 땅굴 앞까지 가보기도 했습니다

당시에도 입구가 막혀 있어서, 이 제보가 진실인지는 확인할 수 없었습니다

 

 

 


부산에서 벌어진 일제의 수탈 역사를 봤을 때 강제집징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습니다

1930년 완공된 오륙도 인공땅굴도 조선인 600여 명을 16년간 동원해 뚫었습니다

당시 일본은 포진지를 비밀리에 만들기 위해 한국인을

일본으로 밀항시켜 주겠다고 속여 강제 징용했습니다

배에 태운 다음 바다를 맴돌다가 포진지 공사장에 내려놓고는

일본에 도착했다면서 일을 시켰다고. 콘크리트 거푸집을 만들고

일본에서 운송한 포를 장착하고, 철도레일을 까는 등 노역의 희생자가 됐습니다.

"역사적 가치는 물론이고, 만일 과거 주민들이 희생됐다면

마땅히 후손들이 진실을 파헤쳐야 하지 않겠습니까."

전문가들은 한뜻으로 태종대 땅굴의 역사적 가치를 언급했습니다

알려지지 않은 일제 수탈의 역사가 지금도 곳곳에 숨어 있답니다

태종대를 시작으로 이제는 파편화된 역사 퍼즐을 하나둘씩 맞춰야 한다고

김한근 소장은 "아직도 부산에 숨겨진 땅굴이 많고 여러 설이 나오고 있다

지금부터라도 조사나 연구에 나서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취재팀은 지난 22일 부산시로부터 "하나의 굴이

더 발견됐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이에 본보와 부산시, 태종대유원지사업소는 땅굴 내부 진입을 위해

필요한 절차에 나서며 '아픈 역사'를 함께 파헤치기로 했습니다

           (부산일보 정보에서 올려 봅니다)

한반도 남서해안 일대에는 일본군이 구축해 놓은

토치카, 포대, 진지동굴 등 수많은 군사시설들이 남아 있다
주로 일제가 패망하기 직전 미군의 한반도 상륙에 대비하여 

본토결전이라는 미명하에 수많은 한국인들을 강제 동원하여

밤낮으로 서둘러 만든 것들이다
오늘날까지도 대부분 사람들의 무관심 속에 방치되어 왔다